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녹산의 난 (문단 편집) ==== [[낙양]], [[하남]]의 전황 ==== 낙양-동관 축선에서는 가서한이 동관의 지휘권을 인수한 직후 대치국면에 들어간다. 가서한군은 지속적으로 지원군을 받아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거느려 안녹산의 본대에 비해 숫적으로는 우세했으나 절반정도는 저자거리에서 ~~[[쇼 미 더 머니]]~~ 돈을 뿌려 징집한 병력이기에 질적으로는 문제가 많았고, 때문에 동관을 중심으로 방어전을 벌이면서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이때에 가서한은 풍질을 앓고 있는 상태라 휘하 장수들에게 대부분의 지휘권을 이양했다고 한다. 동관에서의 대치기간 동안 양국충은 '''[[이게 다 XXX 때문이다|이게 다 너 때문이다]]'''는 원망을 듣고 있어 인망이 극히 떨어진 상태였다. 거기다 안녹산이 '양국충 토벌'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기에 '''[[조조(전한)|양국충만 죽여버리면 난이 평정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아 양국충은 극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오초칠국의 난]]의 사례도 있었으며, 실제로 가서한의 부하인 [[고구려]]계 유민 출신인 [[왕사례]]가 기병 30여 명으로 양국충을 동관으로 납치해 죽여버리려다가 가서한이 말려서 그만두기도 했다.~~아깝다~~] 이에 두려움을 가진 양국충은 '동관 배후에 예비병력이 없어 불안하다' 핑계를 대면서 자신을 보위할 군대를 파상에 1만여, 장안에 3천여 병력을 따로 편성하지만 가서한이 이를 눈치채고 파상군을 동관에 흡수하면서 양국충의 위기감은 더더욱 심해진다. 이는 얼마안가 '''대참사를 불러온다.''' 그외에 당은 오왕 이지를 영창태수, 하남도지병마사로 삼아 안녹산 토벌을 명령하자 그는 가분이라는 장수에게 병력 2천여 명을 맡겨 옹구로 파견했으며, 진원현령인 [[장순(당나라)|장순]] 또한 하남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1천여 명을 이끌고 옹구로 가서 합류한다. 옹구[* 雍丘, 현재의 [[하남성]] 사현.]는 안녹산의 세력 측후방을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성이기에 곧 안녹산군의 집중공격을 받았고 가분은 곧 전사하나 장순이 지휘권을 인수해 오왕의 선봉사라 칭하며 옹구를 사수한다. 안녹산의 장수인 영호조가 3월에 4만여 병력을 이끌고 옹구를 60일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했고 이어 철수하는 안녹산군에 대해 장순은 오히려 역공을 가해 호족 병사 2천여 명을 사로잡는 성과를 거둔다. '''이후로도 [[장순(당나라)|장순]]은 최대로 잡아도 3천 명을 넘기지 않는 소규모 병력으로 여러 차례 수성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해 당의 [[전쟁영웅]]으로써 안녹산군의 골칫거리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